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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최초의 상용 슈퍼컴퓨터 제작한「윌리엄 노리스」사망 Peter Judge ( ZDNet UK ) 2006/08/25 |
거대 메인프레임 회사 컨트롤 데이터 사를 설립하고 최초로 상용 슈퍼컴퓨터를 만들었던 윌리엄 노리스가 향년 9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. 노리스는 1964년 타 상용 컴퓨터보다 10배나 빠른 최초의 슈퍼컴퓨터 CDC6600를 포함하여 IT 분야에서 무수한 성공을 일궈냈다. 또한 1984년 50억 달러 규모였던,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데이터 프로세싱 회사인 컨트롤 데이터 설립의 공신이기도 했다. 그 전에 노리스는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미 해군을 위해 암호 해독을 연구 했고 스페리 사의 세계 최초 시판용 컴퓨터인 유니백 사업부문을 운영했다. 사회적 개혁부문에서 그가 보였던 노력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는데 컨트롤 데이터 사는 그 당시 생소하게 여겨졌던 직원 자녀의 보육시설을 제공했다. 또한 1960년대 폭동으로 피폐해진 빈민지역의 공장을 설립하는 프로젝트에 관여했다. 컨트롤 데이터 사를 벗어나서도 그는 풍력발전, 알래스카에서 농업 사업계획 및 과거 죄수였던 이들에게 자동차를 대여하는 프로젝트를 장려했다. CDC6600은 IBM을 위협했고 34명으로 팀을 구성해 바로 이 컴퓨터를 구축했던 엔지니어 세이무어 크레이의 이름을 널리 알렸던 일종의 상징적인 기기였다. 수 백 명의 엔지니어로도 IBM은 이 제품에 필적할 수 없어 FUD(공포, 불확실성 및 의혹)으로 이를 죽이려 했지만 자사의 시스템/360 메인프레임 라인에서 더 빠른 모델을 완성시키지 못했다. 노리스는 IBM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하여 결국 6억 달러를 받아내면서 고객을 위해 외주 제작된 데이터 프로세싱을 운영했던 IBM의 핵심계열사인 서비스 국을 획득했다. 한창 때 컨트롤 데이터 사는 디스크와 기타 주변장비를 제조했고 IBM의 제품보다 10퍼센트 먼저 그리고 10퍼센트 싸게 제품을 내놓으면서 IBM을 크게 따돌렸다. 1972년 크레이는 컨트롤 데이터 사를 떠나 자신의 회사를 설립했고 이 회사의 제품은 시중 제품 중 가장 빠른 컴퓨터라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. 1960년대 및 1970년대에 일어난 메인프레인 붐으로 컨트롤 데이터 사는 플라토라 불리는 컴퓨터 기반의 교육 시스템 구축을 위한 10억 달러 프로젝트나 노리스의 사회 프로젝트 같은 대형 프로젝트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. 1980년대 잔인한 현실이 맞물리기 시작하면서 노리스는 적대적 경영권 취득으로 불거진 사회적 파탄에 강력히 대항하자면서 규제기관은 그들이 사회에서 얻는 이득을 기초로 합병을 승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. 그러나 그 말은 컨트롤 데이터 사의 현실이 되었다. 1985년 4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하면서 전체 직원 중 2/3을 해고하게 되었다. 1988년 컨트롤 데이터 사는 성공적이었던 자사의 하드디스크 사업부문을 헐값에 팔아치워 1989년 시게이트 테크놀러지가 이를 매각했다. 이 기업의 나머지 부문은 BT의 글로벌 서비스 계열사인 Syntegra(미국)가 되면서 IT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. 노리스는 네브라스카주의 레드 클라우드에서 성장했고 전기공학 학위를 따기 전까지는 아마추어 무선사였다. 제 2차 세계대전 동안 미 해군의 암호 해독 계산기를 연구하면서 그는 컴퓨터 산업이 태동할 무렵 앞 자리에 있었고 전쟁 후 해군의 자금지원으로 ERA를 설립했다. ERA는 랜드 사에 의해, 랜드 사는 스페리 사에 의해 매각되었고 스페리 사는 노리스에게 자사의 상용 컴퓨터 부문인 유니백을 맡겼다. 노리스는 미네소타 주 블루밍턴의 한 요양원에서 8월 21일 사망했다.@ |
Posted by 다꺼


